28/07/2013 12.30.43 | ||
Japan is in ferment, especially in the field of photography, movie, comics but above all fashion. Eastern culture is spreading worldwide and the results are particularly tangible in the fashion system. A completely different world from the Western one, made of new unique, minimalist and fascinating materials and shapes that finally stopped the old stereotypes: Japan – Geisha – Kimono. Japanese creative talents have always been great “revolutionaries”; among the firsts who made a real impression on the fashion world back in the 70s we find Kenzo and Issey Miyake. In the 80s Rei Kawakubo and Yohji Yamamoto shook the fashion industry introducing inventive shapes, fabrics and lines, making a big “structural” impact on contemporary fashion. Nowadays Japan continues to crank out new talents that, as for their predecessors, are often a discussed topic between supporters and opponents; their creations indeed are works of art that can be worn, made of a mixture between romanticism and contemporary, and can be so unexpected and original that sometimes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them.
|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news
고딕 시대 복장 Ⅱ
패션전문자료사전
고딕 시대 복장 Ⅱ
11세기 말부터 2세기에 걸친 십자군의 동방원정은 유럽의 문화, 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어 14, 15세기가 이르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직물산업의 발달은 대단했다. 플랑드르,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모직물의 번영은 상인계급을 대두시켜 상공업의 발달을 재촉하였고 상인은 도시의 부르주아가 되어 귀족과 어깨를 같이 하게 되었다. 견은 이탈리아를 거쳐 동방에서 수입되거나, 또 이탈라아의 제노바, 피렌체로부터 생사 상태로 수입된 것을 프랑스 등에서 자유로이 직물로 생산하면서 이 무렵부터 유럽적인 감각의 것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북방에서 모피가 수입되어 코트의 안감이나 옷단 등에 사용되면서 의복의 재료가 풍부해졌다. 이 밖에 칠보세공, 금속세공, 가죽세공, 유리세공 등의 기술도 숙련되어 아름다운 장식품이 의복을 장식했다.
의복은 13세기부터 발달한 입체적 구조를 토대로 보다 아름다운 실루엣을 추구하였고 장식성이 강해졌다. 14세기의 여성복으로는 드레스(코트아르디), 서코트, 망토, 그리고 말기에는 우플랑드(houppelande)가 있다. 드레스의 목선은 옆으로 넓게 트이고 소매는 꼭 맞게 단추를 달거나 반소매의 소맷부리에 티페트라 불리우는 장식 천을 달았다. 허리는 가늘고 옷단엔 아름다운 플레어를 넣어 트레인을 끄는 것도 있었다. 긴 트레인이 나타나 이 무렵부터 옷자락을 잡아주는 여성이 뒤에 따르는 일도 있었다. 12세기 중엽부터 기사 사이에서 나타난 문장은 신분, 가문을 중시하는 풍습과 연결되어 14세기에는 가문을 넣은 문복(紋服)이 나왔다. 결혼한 경우는 좌우에 넣고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문장(주로 주인)은 오른쪽에, 그 방계는 왼쪽에 넣었다. 여성은 자수나 아플리케로 아름답게 문장을 넣었다. 서코트의 진동둘레는 13세기보다 깊고 크게 벌어진 드레스도 나타났다. 그리고 가죽으로 단을 넣고 보석 등으로 장식, 아름다운 플레어를 넣었다. 또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중반에 걸쳐 우플랑드라는 대형 의복이 남녀 사이에 착용되었다. 이 의복은 코트에 해당하며 높은 칼라가 달리고 큰 소매이며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올려 입는 일이 많았고 광택이 있는 식물무늬의 천에 모피의 안감이나 테두리를 한 화려한 것이었다.
특히 남자의 것에는 소맷부리나 옷단을 슬캘럽 형태로 한 것도 있었다. 14세기의 남자옷은 재킷의 길이가 짧아지고 스탠드 칼라도 보였으며 앞중앙, 소맷부리를 단추로 여몄다. 신발은 길이가 길어져 아래 속옷이나 상의의 안쪽에서 끈으로 매어 신었다. 여성의 머리 형태는 좌우 중앙에서 갈라 귀밑에서 모아 장식했다. 남자는 후드나 모자의 끝에 리리파이프라는 길고 가는 천을 달았다. 15세기가 되자 재단이 더욱 정교해져 허리선에 절개선을 넣어 스커트에 개더, 플레어가 보다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여성의 드레스는 높은 허리선에서 앞뒤가 깊이 파인 V형에 칼라 등이 달리고, 좁은 소매에 커프스를 달았으며 높은 허리선에는 폭넓은 벨트를 묶어 벨벳, 모피 등을 자주 이용했다. 또 페티코트에는 아름다운 천을 사용해 보이도록 옷단을 걷어올려 걸었다.
의복은 13세기부터 발달한 입체적 구조를 토대로 보다 아름다운 실루엣을 추구하였고 장식성이 강해졌다. 14세기의 여성복으로는 드레스(코트아르디), 서코트, 망토, 그리고 말기에는 우플랑드(houppelande)가 있다. 드레스의 목선은 옆으로 넓게 트이고 소매는 꼭 맞게 단추를 달거나 반소매의 소맷부리에 티페트라 불리우는 장식 천을 달았다. 허리는 가늘고 옷단엔 아름다운 플레어를 넣어 트레인을 끄는 것도 있었다. 긴 트레인이 나타나 이 무렵부터 옷자락을 잡아주는 여성이 뒤에 따르는 일도 있었다. 12세기 중엽부터 기사 사이에서 나타난 문장은 신분, 가문을 중시하는 풍습과 연결되어 14세기에는 가문을 넣은 문복(紋服)이 나왔다. 결혼한 경우는 좌우에 넣고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문장(주로 주인)은 오른쪽에, 그 방계는 왼쪽에 넣었다. 여성은 자수나 아플리케로 아름답게 문장을 넣었다. 서코트의 진동둘레는 13세기보다 깊고 크게 벌어진 드레스도 나타났다. 그리고 가죽으로 단을 넣고 보석 등으로 장식, 아름다운 플레어를 넣었다. 또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중반에 걸쳐 우플랑드라는 대형 의복이 남녀 사이에 착용되었다. 이 의복은 코트에 해당하며 높은 칼라가 달리고 큰 소매이며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올려 입는 일이 많았고 광택이 있는 식물무늬의 천에 모피의 안감이나 테두리를 한 화려한 것이었다.
특히 남자의 것에는 소맷부리나 옷단을 슬캘럽 형태로 한 것도 있었다. 14세기의 남자옷은 재킷의 길이가 짧아지고 스탠드 칼라도 보였으며 앞중앙, 소맷부리를 단추로 여몄다. 신발은 길이가 길어져 아래 속옷이나 상의의 안쪽에서 끈으로 매어 신었다. 여성의 머리 형태는 좌우 중앙에서 갈라 귀밑에서 모아 장식했다. 남자는 후드나 모자의 끝에 리리파이프라는 길고 가는 천을 달았다. 15세기가 되자 재단이 더욱 정교해져 허리선에 절개선을 넣어 스커트에 개더, 플레어가 보다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여성의 드레스는 높은 허리선에서 앞뒤가 깊이 파인 V형에 칼라 등이 달리고, 좁은 소매에 커프스를 달았으며 높은 허리선에는 폭넓은 벨트를 묶어 벨벳, 모피 등을 자주 이용했다. 또 페티코트에는 아름다운 천을 사용해 보이도록 옷단을 걷어올려 걸었다.
고딕 스타일
고딕은 13~15 세기의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미술 양식으로 첨탑을 특징으로 한 사원건축이 대표적이다. 패션에서는 12세기의 로마네스크에 이어지는 스타일로서, 로마네스크의 특징인 느긋한 롱 튜닉 스타일이 실용적으로 변화하여, 보다 장식성과 호화스러움이 가미된 과장된 패션을 말한다. 이것은 십자군 원정 후 동방과의 무역이 발전하고 소재도 풍부하게 되어 디자인에도 이국적인 요소가 들어간 것으로서 모피를 트리밍한다든지 안으로 사용한 것, 금자수나 금라메의 브로케이드 등의 호장(豪壯)한 의상에 대표된다. 고딕 초기의 복장은 남녀차가 적고 헐렁한 튜닉이나 망토, 바닥에 단을 끌게 한 스타일이 많았으나 후기가 되면 여성은 하이 웨이스트나 로 웨이스트 등의 웨이스트라인을 의식한 스타일로 변화하고, 남성은 짧은 듯한 상의나 신체에 꼭 맞게 피트한 스타일이 정형화(定型化)된다. 장식이나 호화스러움도 꽤 과장된 것이 등장하고, 여성은 기묘한 연통형이나 원추형의 에냉이라고 하는 헤드 드레스를 쓰고, 장식적이고 사치한 의상의 단을 이상하게 길게 끈 스타일이 되며, 발끝을 멋대로 가늘고 길게 한 풀레느라고 하는 구두도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고딕 스타일은 이 후기의 것을 가리킬 때가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딕 스타일 [Gothic style] (패션전문자료사전, 1997.8.25, 한국사전연구사)
고딕
패션전문자료사전
고딕
[ Gothic ]
13~15세기에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 퍼진 미술양식. 이 명칭은 「고트인(게르만계의 한 부족)과 같은」이라는 이탈리아 속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로마네스크에 이어 일어난 기독교 미술에서 첨탑(尖塔), 첨두형(尖頭形) 아치 등의 수직적 구축을 특징으로 한 사원 건축이 대표적이다(프랑스의 아미앙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등). 건축・회화・조각 전반에 기독교 신앙의 고양이나 도시생활의 번성이 반영되어 있으며, 자연스러움에 가까이 하려고 하는 정연한 표현도 하나의 특징이다. 사원 내외의 조각에는 식물이나 인간(신)의 자연스런 외관이 부활되었고, 또한 고딕 장식의 최대 특징으로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발달을 들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딕 [Gothic] (패션전문자료사전, 1997.8.25, 한국사전연구사)
-
오스카 와일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스카 와일드 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 |
---|---|
출생 | 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 |
사망 | 1900년 11월 30일 (46세) 프랑스 파리 |
직업 | 작가 |
언어 | 영어, 프랑스어 |
국적 | 아일랜드 |
모교 | 트리니티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
활동 기간 | 빅토리아 시대 |
장르 | 드라마, 단편 소설, 대화, 저널리즘 |
문학 경향 | 유미주의 |
주요 작품 | 《진지함의 중요성》,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배우자 | 콘스탄스 로이드 |
자녀 | 시릴 홀랜드, 비비안 홀랜드 |
영향 받은 인물[보이기]
| |
영향 준 인물[보이기]
| |
서명 |
오스카 핑걸 오플래허티 일즈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1854년 10월 16일~1900년 11월 30일)는 아일랜드의 극작가, 소설가, 시인, 단편 작가이자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 날카롭고 약삭빠른 재치로 유명하며, 런던의 후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으로 가장 성공한 극작가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가장 알려진 유명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와일드는 퀸즈베리 사건이라는 유명한 재판으로 인해 극적인 몰락을 겪게 되고, “막중한 풍기문란”으로 감옥에 수감된다. 학자인 H. 몽고메리 하이드는 이 용어가 영국 법정에서 “비역죄”(Buggery Act 1533)에까지 이르지 않은 동성애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사건 때문에 영국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평생 돌아가지 못했으며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뇌수막염에 걸려 사망했다.
생애[편집]
와일드는 더블린의 웨스트랜드 로 21가에서 앵글로계 아일랜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와일드 경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안과와 비과 외과의사이며, 고고학과 민속에 대한 책을 썼다. 또한 그는 박애주의자로, 트리니티 칼리지 뒤에 위치한, 링컨 플레이스 내, 도시 빈민을 위한 무료 진료소로 유명하였다. 그는 현재, 애들레이드 도로에 위치한 더블린 안과 비과 의사의 선구자였다. 그의 어머니 제인 프란체스카 엘지는 성공적인 작가이며, "스페란차'로 유명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다.
1855년 6월 와일드 가는 그당시 유행하던 거주 지역인 1번 에리온 스퀘어로 이사하였다. 와일드의 어머니는 토요일마다 정기적인 오후 살롱을 열었으며, 그 초대객에는 세리던 르 파누, 사무엘 레버, 조지 페트리, 아이삭 버트, 사무엘 퍼거슨등이 있다. 오스카는 9살때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페르마냐, 에이스킬렌에 있는 포토라 왕립 학교에 1864년에서 1871년까지 재학하였으며, 여름 기간 동안 그의 가족과 함께 시골의 웩스포드의 워터포드와 메이요에 있는 윌리엄 경의 가족집에서 지냈다. 와일드의 형제들은 어린 조지 무어와 함께 놀곤 하였다.
포르타를 졸업한 후, 와일드는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 문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1874년부터 1878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태만하기로 유명했으나 고전학에서는 발군의 성적을 나타냈다. 1882년에미국으로 강연여행을 떠나 희곡을 쓰고 이것이 뉴욕에서 상연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몇 가지 소설이나 시를 쓰고 또는 비극도 썼으나 와일드의 재능이 발휘된 것은 경묘한 희극의 분야, 즉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시시한 여자>(1893), <이상적(理想的) 남편>(1895) 등으로, 그 정점을 차지하는 것이 <성실하다는 것의 중요성>(1895)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와일드는 왕정복고기의 콩그리프가 이룬 희극 작법의 전통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극 <살로메>는 영국에서 상연이 금지되었으며 1894년에 사라 베르나르에 의해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1895년에 와일드는 동성애 사건으로 2년간의 노동 금고형 처분을 받았다. 그 후 파리에 나왔으나 건강을 해치고 경제적으로도 파탄내고 뇌수막염에 걸려 사망하였다.
문학 작품[편집]
시[편집]
- 라벤나 (1878)
- 시집 (1881)
- 스핑크스 (1894)
- 리딩 감옥의 노래 (1898)
희곡[편집]
- 베라; 혹은, 무정부주의자들 (1880)
- 파두아 공작부인 (1883)
- 살로메 (프랑스 판본) (1893, 1896년 파리 시에서 초연되었다)
-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1892)
- 하찮은 여인 (1893)
- 살로메 : 1막의 비극: 알프레드 더글라스 경이 오스카 와일드의 프랑서 판본을 번역하고, 오브리 비어즐리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곁들였다.(1894)
- 이상적인 남편 (1895) [4]
- 진지함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1895) [5]
- La Sainte Courtisane and A Florentine Tragedy Fragmentary. First published 1908 in Methuen's Collected Works
산문[편집]
- 캔터빌의 유령 (1887)
-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 (1888) [6]
- 아서 새빌 경의 범죄와 다른 이야기들 (1891)
- 의향 (1891)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1)
- 석류의 집 (1891)
- 사회주의적 인간의 영혼 (First published in the Pall Mall Gazette, 1891, first book publication 1904)
- 구렁텅이에서 (1905)
- 오스카 와일드의 편지 (1960) This was rereleased in 2000, with letters uncovered since 1960, and new, detailed, footnotes by Merlin Holland.
- Teleny or The Reverse of the Medal (Paris, 1893) Wilde is involved in its composition but not confirmed as its author.
동화[편집]
바깥 고리[편집]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 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
- Oscar Wilde – Standing Ovations, a variety of resources including full texts.
- Information concerning Wilde's conversion to Catholicism
- Transcript of Oscar Wilde's trials
- Statue of Oscar Wilde and Eduard Vilde in Tartu (second largest city in Estonia)
- William Andrews Clark Memorial Library, home to the most comprehensive Oscar Wilde collection in the world.
- Reading Between the Lines Ragged Edge Magazine article by Louise Norlie, Treatment of Disability in The Birthday of the Infanta
- Prison Reform Oscar Wilde and his letters to the Daily Chronicle; Prison reform and De Profundis
- Michael Matthew Kaylor, Secreted Desires: The Major Uranians: Hopkins, Pater and Wilde (2006), a 500-page scholarly volume that situates Wilde among the Victorian writers of Uranian poetry and prose (the author has made this volume available in a free, open-access, PDF version).
- Oscar Wilde, Knitting Circle article. Includes information about Maggi Hambling's Wilde statue in London, and the controversy that has attended it.
-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 8월 7일 수요일
tools
|
|
wax tools
Each of the tapered tools in this kit has a ridged file surface that cuts on the push stroke. The longest is 20 millimeters in length and the shortest is 11 mm. (Kit # FIL-740.00) | |
Shown here is the removal of raised imperfections on the inside flat surface of this injected wax pattern. The smaller dimensions enable effective wax removal in tight areas without damage to other parts of the wax model. Injection or carving wax is easily removed from the cutting surface of these tools because of its parallel, ridged tooling design. | |
These small rigid tapered wire spiral files appear serrated in profile. The efficient spiral design cuts on the pull stroke. They are 18 mm in length and are mounted in wooden handles. Two tools, fine and very fine sizes come in the kit. (Kit # CVR-505.15) | |
Detailing in-between the gallery wires of this injected wax heart pendant is simple with these tools. The unique design of these versatile tools allows them to file, clean and saw (without threading) in very small areas. The fine pointed ends of the spiral serrated wire files are 0.60 millimeters (very fine) and 1.00 millimeters (fine). | |
This multi-purpose kit contains six stainless steel precision carving and shaping tools. (Kit # CVR-550.12) | |
Each tool is finely sharpened and expertly fashioned so that the weight is behind the cutting edge�less pressure is needed and there is ease of control. This one is ideal for creating or cleaning a thin recessed area. | |
These four-miniature rasp files are ideal for carving waxes. Each tool has a cutting surface that's 28 millimeters in length. (Kit # Fil-755.00) | |
The half rounded shape quickly removes wax in the central portion of an oval gypsy ring. The long handles give good leverage for the small file surfaces and they are great for removing wax and shaping in tight or awkward areas. | |
This kit contains four double-ended shaped precision scraping tools. Each shape is sharpened and finely fashioned on one side and blunt on the topside. (Kit # CVR-500.00) | |
The sharpened side of the square shaped tool is ideal for the removal of a parting line that is on a flat shank. The blunt side will be good for burnishing the surface. It's 7.5 millimeters square. (The teardrop shape is perfect for finishing rounded shanks or other domed areas.) | |
The Max Wax pen is a battery operated cordless unit that fits nicely in your hand is easy to manipulate. By depressing the tab (A), you achieve instant heat to the tip. | |
This wax ring, with crisp angular edges has been hollowed and is ready to be capped. Capping the model allows for consistent, exacting wall thickness as well as smooth finishing inside the most complex pattern. | |
The wax pen has a tip that's 0.30 millimeters in diameter, is rigid, holds it's shape and heats up instantly to temperatures suitable for working with carving wax. It's ready to go when you are�a time saver. |
피드 구독하기:
글 (Atom)